2015년의 시작, 마음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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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hrist, 생각노트
Posted
2015-01-02 10:18
세월호 참사 1주기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 본 포스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글입니다. 딴지나 토론은 환영하지만 논리도 없는 논쟁이나 맹목적인 비난은 거절합니다.

2015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사실 마음이 조금 무겁게 시작된다.

내 대학시절부터 지금에까지 몸을 담고 있던 청년 공동체.
몇 해 전 청년부 예배라는 이름을 없애고 5부 예배라는 이름으로 장년부 예배에 통합되어질 때 나도 그러했고 많은 선배들이 우려했던 그 일들이 이제 점점 눈 앞에 다가오기 때문.
내게 이야기 한 누군가의 말처럼 청년부에 파이팅이 사라진게 바로 그 “언제”부터 더라는 것이 또한 단순히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걸 방증하지는 않을까.

자그마치 15년, 군에 있던 시간을 빼면 13년.
그 시간 동안 지금의 나를 이룬 데에는 청년 공동체만의 그것들이 저변을 이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것들이 시스템과 함께 사라졌고, 시스템으로 인해 더 이상의 청년 공동체의 정체성은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르고 있다.
혹자는 청년들 스스로의 문제라고 치부하기도 하나 아니, 청년 스스로의 문제도 있다 할 수도 있으나 시스템 역시 문제다.

어느 공동체고 어느 모임이고 그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다수가 아닌 소수다.
파레토의 법칙은 교회 공동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교회 공동체는 그 20% 이하의 비율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현대는 교회 안에도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실정이다.
예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소비한다. 그 소비자는 정체성이라는데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소비 하면 될 뿐.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마저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면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은 시간적 문제다.
명목상으로는 존재하나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고 시스템을 어찌 할 수 없음에 화가 난다.
이것이 정말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인건지 궁금하다. 내 좁은 시선으로 인한 어리석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로 서 있게 한 것은 지난 시간들의 청년 공동체다.
그 안에서 청년이 들어야 할 말씀과, 청년으로서 받아야 할 도전과, 청년으로서 받아야 할 훈련과, 청년으로서 쏟아야 할 열정과, 청년으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청년 공동체에는 그러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거기에 시스템이 한 몫을 더하고 있다.

청년이 허리가 되는 교회 공동체는, 청년이 무얼 주관한다고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장년부의 기도회를 주관하고 청년이 교회 행사를 주관한다고 하여서 교회의 허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청년의 때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을 수 없다면 아니 마땅히 공급을 해 주어야 할 곳에서 청년의 때에 필요한 그것들을 공급해 주지 못한다면, 이들은 성장 장애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올해, 길게는 내후년까지. 이 기간이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의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년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거나, 아니면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거나.
솔직히 나는 이제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다.
시스템 자체가 도우려하기는 커녕 강제하고 방관하며 정히 하고 싶으면 따로 해라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죽기살기의 자생이 아닌 이상 어렵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독려하는 것 말고는 없음에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다.

Authored By 멀더끙